1763년 브라질 식민지의 수도를 리우로 옮겼다.
중간에 나폴레옹을 피해 천도하여,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1802년-1821년)
왕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갔으나, 그의 아들은 브라질에 남아 독립을 선언한다. (1822년)
1889년 공화국 선포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도를 유지하다 1960년 브라질리아로 이전하였다.
리우 역사지구 투어는 몬세라트 성모 수도원에서 시작했다.
1993년 이 교회 부근에서 노숙자 학살이 일어나 칸달라리아 운동이 일어났다.
다양한 전시와 공연장 시설을 갖춘 곳. 2013년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박물관으로 꼽힌다.
19세기에는 고급 의류매장, 향수가게, 커피숍 등으로 유명한 거리였으나,
현재에서는 happy hour를 즐길 수 있는 바들이 모여있다.
식민지 총독 관저였다가 본국의 왕이 와서 왕궁으로 변했다.
이 곳에서 페드루 2세가 브라질 독립도 선언하고,
그의 딸 이사벨공주가 노예해방을 선언한 장소이기도 하다. (1888년)
그 옆으로는 리우데자네이루 주 입법의회가 있다.
1894년에 오픈한 콜롬보 커피숍은 U City Guides 세계에서 아름다운 10개의 커피숍에 들만큼 고전적이고 아름답다.
예전에는 셀럽들의 갈라쇼장소로, 요즘에는 결혼식 피로연 장소로 인기라고 한다.
1968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가기도 하였단다.
리우 중심에 위치한 Largo da Carioca에서 언덕위를 바로 보면, 리우의 시작과 함께한 산토 산토니오 수녀원이 보인다.
산토 안토니오 수녀원과 성당은 1608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첫 미사는 1615년에 거행하였다.
리우가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562년.
리우 시립 극장.
공화국 센트랄 대로(현. avenida Rio Branco)모던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고 한다.
오페라 하우스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 도서관.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황제의 소장품: ‘19세기 브라질 및 외국의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
Lapa지구. 리우의 중심지이며 인근에 많은 대기업, 정부 기업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페트로브라스, BNDES 사회경제개발국립은행, Caixa연방경제은행 등), 벤투라기업타워
라파의 상징인 아치형의 하얀 까리오까 수로에는 현재 트램이 상단부에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마야 건축양식인 피라미드 모양을 한 리우 대성당도 그 뒤쪽으로 위치해있다.
1990년 이 곳에 거주하던 칠레 예술가 세라론에 의해 만들어진 타일 계단이다. 까리오까 수로에서 도보 10분이내.
처음에는 리우 도시 건설현장의 폐기물 속에서 찾은 타일로 만들어졌지만,
이후 세계 60여개 국에서 보내준 2천개 이상의 타일로도 장식하였다. 한국의 태극기 타일도 있다.
가이드를 동반한 파벨라(빈민촌) 투어도 있다.
2020/09/24 - [유목 생활/브라질]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예수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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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 기간에 삼바학교들의 화려한 경연장이 되는 삼보드로모
1984년에 완공된 브라질의 유명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작품이다.
1950년 월드컵을 위해 건설된 마라까나 축구장,
2014년 월드컵 경기장으로도 사용되었다.
브라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
브라질의 문화, 정치의 중심지였던 곳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방문할 때마다 묘한 매력에 사로잡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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